<공상의 뇌2012>연출가 류세이오 류를 만나다
장애인극단판과 류세이오 류의 무대가 갖는 의미

▲리허설 장면.
무대 위에 전동휠체어를 탄 배우가 있다. 공백 속에 있는 듯 움직임 없이 있던 그녀가 한쪽 팔을 위로 쳐들자, 무대 양옆에서 두 명의 배우가 각각 엎드린 자세로 천천히 기어 나온다.
지난달 11일 서울 문래예술공장 드림씨어터에서 초연된 무용극의 시작 장면이다. 전체 조명이 켜진 무대, 배우들 머리 위로 일그러진 동그라미 모양의 조형물과 휠체어 바퀴나 자전거 바퀴로 보이는 조형물이 매달려 있다. 공연 중간에는 균형이 조금 어그러진 커다란 휠체어 한 대가 공중에서 힘 있게 춤추듯 오르내린다.는 장애인극단판과 류세이오 류 씨가 함께 만든 작품으로 14회 서울변방연극제 초청작이다.

장애인극단판과 류세이오 류 씨의 사이에는 지난 4월 서울과 광주에서 열린이라는 공연이 있다.은 광주의 극단 신명과 일본의 극단 독화성, 야전의 달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를 연출한 류세이오 류 씨는에서 까치 역을 맡아 연기했으며,마지막 부분에서 이팝나무 꽃잎이 떨어지는 가운데 홀로 춤을 추며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뇌성마비장애인인 류 씨는 독화성의 작품에 오랫동안 함께해왔으며, 2004년 ‘류세이오 댄스 프로젝트’를 결성해 라이브 연주와 솔로 댄스를 함께하는 공연을 해왔다.
– 비마이너 : <공상의 뇌2012>라는 작품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
= 류세이오 류 :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여러 것들이 생겨나 그것이 서로가 이어지고 형상화되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움직임을 이어가고자 했다.
장애인극단판은 지난해공연을 준비하며 한국에 온 류 씨에게 판 단원들과 함께하는 워크숍을 제안했다. 류 씨는 장애인극단판과 이메일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이번 작품을 구상했다. 그리고 지난 3일부터 장애인극단판 배우들과 일주일간의 워크숍을 통해 이번 작품을 만들어냈다.

▲<공상의 뇌 2012>한 장면.
장애인극단판은 노들장애인야학 연극반의 경험을 바탕으로 출발한 극단이다. 장애인극단이라는 정체성으로 독립한 지 5년이 지났다. 주류와 다른 신체를 지닌 배우들과 연극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부터 휠체어를 탄 배우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공연장을 찾는 일까지, 비장애인극단이라면 고민하지 않을 부분들을 자신의 존재 근거로 삼아왔다. 장애인극단판은 한국 사회 장애인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 안으며 공연을 만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장애인극단판에 이번 공연은 그들만의 ‘독특한 표현방법’을 찾기 위한 시도다.
“다수는 우리를 장애인이라 부르고 또는 장애예술가라 부르지만 우리는 그 안에 갇히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만의 독특한 표현방법을 찾는 여행을 시작하였고 장애인극단판과 일본 안무가이자 연출가 류세이오 류가 함께하는 이 작업에서 그 무언가를 찾게 될 것이다.” _ 장애인극단판의 소개 글에서
그동안 장애인극단판은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차별을 무대 위로 옮겨와 장애인의 삶을 드러내는 식의 작업을 주로 해왔다. 단원 각각의 경험, 일상에서 경험한 억압과 차별을 하나의 극으로 완성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고, 연극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처지를 바꿔 상상해보는 환타지극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는 공연 장르의 차이가 뚜렷하기도 하지만 무대 위로 차별 기제를 옮겨 오는 형태도 아니었다. 연출가 류 씨의 방식은 그동안 장애인극단판이 주로 선택해온 방식과 차이를 보였다.
“타악기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무대에 두 명의 배우가 등을 맞대고 돌면서 – 벽과 같이 딱 붙어 있는 느낌으로 – 점점 작아지거나 커지거나 하면서 다양한 형태가 된다. 이후 앉은 상태에서 자세를 맞춘다.” _ 류 씨의 ‘공상의 뇌’ 작업 노트 3장 ‘인간과 동물의 결합’ 시작 부분
류 씨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공상의 뇌’라고 적힌 공책 한 권을 끼고 다녔다. 작품 제안을 받고, 판의 배우들을 생각하며 동작을 구상해놓은 자신의 작업 노트였다. 연필로 빼곡히 적은 이 공책에는 지우개로 지웠다 다시 쓴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류 씨가 구상한 이번 작품은 다섯 장으로 이뤄져 있다. 각 장은 공백, 침묵, 인간과 동물의 결합, 뇌, 두뇌 중심의 활동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류세이오 류 씨의 작업 노트.
– 비마이너 : 공백, 침묵 같은 장의 이름과 춤의 내용은 어떤 관계가 있나?
= 류 : 평소에 혼자 연극을 할 때는 이런 식으로 장이 나뉘어 있으면 장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 춤을 추지만, 이번에는 한 장에 여러 내용을 담아서 표현했다. 1장 공백에는 무음, 두드림, 환상이 담겨 있다.
– 비마이너 : 개념을 떠올리며 춤을 추나, 아니면 춤을 추면서 움직임으로부터 개념을 뽑아내는가?
= 류 : 후자다. ‘공백’을 생각해 ‘공백’을 바깥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 속에서 공백적인 요소를 취하는 방식이다.
– 비마이너 : 장애인극단판에서 연습할 때도 공백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해서 연습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저렇게’라며 움직임 중심으로 연습해왔다고 들었다.
= 류 : 그렇다. 사람들의 동작들을 보고 그 동작들을 취해서 그것을 연결해나가는 방식으로 했다. 그렇게 공백을 만들어냈다.
무대는 ‘공백’에 가깝다. 류 씨는 그런 공백 속에 ‘몸’ 자체를 등장시켜, 관객이 이들의 ‘몸’에 집중하게 한다. 배우들은 흰색 천으로 된 의상을 맞춰 입고 등장한다. ‘장애인’의 몸은 사회의 차별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받아내는 ‘몸’이다. 이 몸이 무대 위에 오를 때, 장애인을 향한 몸의 시선, 비정상의 상징이자 그래서 불행한 사회적인 몸에서 자유로워질 가능성이 생긴다. 무대 위에서 이 몸이 가진 사회적인 맥락은 해체 가능성을 가진다. 이 차이를 지닌 몸들은 빈 무대를 몸 자체로, 춤의 에너지로 채우면서 새로운 언어로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 비마이너 : 판 멤버들을 염두에 두고 공연을 구상했나?
= 류 : 실제로 만나서 연습한 건 지난 1주일 정도였기 때문에, 그전에 사람들을 떠올리며 구상을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같이 있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 있는 연극 이름처럼 ‘공상의 뇌’의 조건 속에서 상상하면서 만들었다.
= 치즈코 바라(류 씨의 어머니, 연극배우) : 전해 들은 것은 휠체어를 탄 사람이 몇 명,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이런 내용이었다.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지를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무척 무리한 동작까지 구상했다.

공상의 뇌 – 마지막 장면을 연기하고 있는 류씨
류 씨의 무대는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는 몸의 규정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무대 밖에서 비장애인이라고 불리는 몸은 일본 춤의 한 장르인 ‘부토’의 느낌으로 몸을 움직이며, 비장애인의 신체 규정을 흩트린다. 비장애인 배우는 아주 천천히 자신의 신체를 비틀며 몇 가지 동작을 반복해 보인다. 이 몸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부드러움이나 편안함과는 거리가 있다. 장애를 규정하는 주류적 잣대인 ‘신체 손상’도 이 무대 위에서 해체되는 느낌이 있다. 무대는 ‘장애의 몸’에서 ‘차이의 몸’으로 재해석될 가능성을 드러낸다. 사회적인 차별이 제거된 무대는 ‘장애’를 규정하는 근거와 낙인을 뒤흔든다.
무대 위에서 낯선 신체는 오히려 유리한 위치에 있다. 낯선 신체의 움직임은 긴장감을 낳는다. 어느 배우의 한쪽 팔은 곧게 펴지지 않고 어느 배우의 걸음은 좌우로 크게 흔들리며 이뤄진다. 익숙한 비장애인의 동작과 다르게 이 배우들의 움직임은 쉽게 예측되지 않으며 다른 방식으로 뻗어 나간다. 전동휠체어를 탄 배우들은 고개를 천천히 돌리거나 팔을 폈다 굽히며 무대 위를 도는 것이 안무의 전부이지만, 관객은 그들의 신체 언어에 주목하게 된다.
– 비마이너 : 언제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나?
= 류 : 10년 전부터다.
= 치즈코 바라 : 야전의 달이라는 극단에서 연습하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몸을 움직이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표현하는 식이다. 이를 ‘자주(自主) 연습’이라고 불렀다. 대본을 쓰는 사람은 그것을 취해서 대본을 쓰곤 한다. 나는 대사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사를 기억해서 말을 했지만, 류는 대사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히려 류는 자유롭게 움직였다. 어떤 식의 자유와 해방 같은 것들을 표현하는 식이었다.
– 비마이너 : 류는 언제부터 혼자 공연을 했나?
= 치즈코 바라 : 2003년부터. 춤을 추기 시작한 뒤 바로였다. 류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졸업 때 무언가를 발표하는데, 논문을 쓴다거나 연극을 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때 류는 춤을 췄다. 음악만 정해서 90분 동안 춤을 췄다. 그때는 분출하듯이 춤을 췄다.

▲마지막 장면, 춤추는 류세이오 류. 사진 김윤섭.
무대는 사회 속에 있다. 어떤 태도로 무대 위를 구성하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관객이다. 관객은 무대와 근접해 있지만 여전히 사회 안에 있다. 하지만 관객을 사회와 분리해 새로운 장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무대가 쥐고 있다.
사회 속에서 시혜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장애인이 무대에 오를 때, 사회는 특수한 서술 방식을 가진다. 장애인과 예술이 겹칠 때 특수한 바라봄의 구조가 생긴다. 진보장애인 운동 진영이 벗어나고자 하는 ‘장애극복신화’가 예술 영역에서도 그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예술과 장애극복신화가 만나면, 작품에 대한 평가나 반응보다는 장애인이 해냈다거나,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다거나 하는 식의 반응이 생겨난다. 우리 사회는 쉽게 그 구도 안에 갇혀왔다. 행위 주체가 장애인인 작품에서 ‘극복’의 담론, ‘에이블’의 담론을 분리해 내는 것은, 예술의 입장에서도 운동의 입장에서도 중요하다.
– 비마이너 : 장애인극단판이 그동안 장애인인 배우를 훈련시켜 무대에 올리는 작업에 치중해온 면이 있다. 그렇기에 류 씨가 이 집단과 함께 작업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 류 : 같이 연습하는 동안 “자유롭게 움직여주세요”라고 부탁했는데, 그때 자유로움이라는 게 무엇인지에 관해 이야기를 듣곤 했다.
= 치즈코 바라 : 자유롭게 움직인다고 하는 건 어려운 대목이다. 류가 “자유롭게 움직이세요”라고 부탁했을 때 거기 있는 사람들은 류처럼 춤 출 수 없었다. 그래서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배우가 우는 일도 있었다. 누구든 그러한데, 누구나 자기에게 가능한 조건 속에서 자유로움을 표현한다. 류는 이것을 ‘자신 안의 자유’라고 부른다. 이것이 실제 공연 연습을 하는 동안에 어려운 대목이었다. 연습하는 동안 ‘이렇게’라며 동작을 특정해주면 차라리 그건 그런대로 따라하기가 좋지만, “자유롭게 움직여주세요”라고 요구하면 류의 움직임처럼 따라하기가 어려웠다. 그 과정이 이어지면서 응어리가 쌓여 그게 폭발했다. 그래서 서로 간에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이야기한 끝에 연습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히가시 타쿠마 씨는 류 씨의 춤에 대해 “과잉인 결여를 끌어안은 류세이오 류의 신체가, 결여 자체를 지렛대 삼아 과잉으로 약동할 때 세계의 어딘가에 금이 간다. 그 균열이 시공의 혼란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그러나 날카롭게 ‘언제, 어디’에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라고 평했다.
를 통해 예술의 언어가 운동의 언어로 작동하는 경험을 한다.는 무대를 통해 여러 가지 척도를 뒤흔들어 놓았다. 사회적인 차별을 제거한 무대 위에서 ‘장애’라는 것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비정상적이고, 부족한 것으로 낙인 찍혀온 몸은 무대 위에서 묻는다. 당신이 느끼는 아름다움의 근거는 무엇이냐고. 당신이 말하는 가능성은 누구를 기준으로 한 것이냐고.
*통역 도움 : 윤여일
김유미 부국장 slowda@beminor.com
<공상의 뇌2012>연출가 류세이오 류를 만나다
장애인극단판과 류세이오 류의 무대가 갖는 의미
▲리허설 장면.
무대 위에 전동휠체어를 탄 배우가 있다. 공백 속에 있는 듯 움직임 없이 있던 그녀가 한쪽 팔을 위로 쳐들자, 무대 양옆에서 두 명의 배우가 각각 엎드린 자세로 천천히 기어 나온다.
지난달 11일 서울 문래예술공장 드림씨어터에서 초연된 무용극의 시작 장면이다. 전체 조명이 켜진 무대, 배우들 머리 위로 일그러진 동그라미 모양의 조형물과 휠체어 바퀴나 자전거 바퀴로 보이는 조형물이 매달려 있다. 공연 중간에는 균형이 조금 어그러진 커다란 휠체어 한 대가 공중에서 힘 있게 춤추듯 오르내린다.는 장애인극단판과 류세이오 류 씨가 함께 만든 작품으로 14회 서울변방연극제 초청작이다.
장애인극단판과 류세이오 류 씨의 사이에는 지난 4월 서울과 광주에서 열린이라는 공연이 있다.은 광주의 극단 신명과 일본의 극단 독화성, 야전의 달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를 연출한 류세이오 류 씨는에서 까치 역을 맡아 연기했으며,마지막 부분에서 이팝나무 꽃잎이 떨어지는 가운데 홀로 춤을 추며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뇌성마비장애인인 류 씨는 독화성의 작품에 오랫동안 함께해왔으며, 2004년 ‘류세이오 댄스 프로젝트’를 결성해 라이브 연주와 솔로 댄스를 함께하는 공연을 해왔다.
– 비마이너 : <공상의 뇌2012>라는 작품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
= 류세이오 류 :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여러 것들이 생겨나 그것이 서로가 이어지고 형상화되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움직임을 이어가고자 했다.
장애인극단판은 지난해공연을 준비하며 한국에 온 류 씨에게 판 단원들과 함께하는 워크숍을 제안했다. 류 씨는 장애인극단판과 이메일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이번 작품을 구상했다. 그리고 지난 3일부터 장애인극단판 배우들과 일주일간의 워크숍을 통해 이번 작품을 만들어냈다.
▲<공상의 뇌 2012>한 장면.
장애인극단판은 노들장애인야학 연극반의 경험을 바탕으로 출발한 극단이다. 장애인극단이라는 정체성으로 독립한 지 5년이 지났다. 주류와 다른 신체를 지닌 배우들과 연극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부터 휠체어를 탄 배우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공연장을 찾는 일까지, 비장애인극단이라면 고민하지 않을 부분들을 자신의 존재 근거로 삼아왔다. 장애인극단판은 한국 사회 장애인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 안으며 공연을 만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장애인극단판에 이번 공연은 그들만의 ‘독특한 표현방법’을 찾기 위한 시도다.
“다수는 우리를 장애인이라 부르고 또는 장애예술가라 부르지만 우리는 그 안에 갇히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만의 독특한 표현방법을 찾는 여행을 시작하였고 장애인극단판과 일본 안무가이자 연출가 류세이오 류가 함께하는 이 작업에서 그 무언가를 찾게 될 것이다.” _ 장애인극단판의 소개 글에서
그동안 장애인극단판은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차별을 무대 위로 옮겨와 장애인의 삶을 드러내는 식의 작업을 주로 해왔다. 단원 각각의 경험, 일상에서 경험한 억압과 차별을 하나의 극으로 완성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고, 연극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처지를 바꿔 상상해보는 환타지극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는 공연 장르의 차이가 뚜렷하기도 하지만 무대 위로 차별 기제를 옮겨 오는 형태도 아니었다. 연출가 류 씨의 방식은 그동안 장애인극단판이 주로 선택해온 방식과 차이를 보였다.
“타악기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무대에 두 명의 배우가 등을 맞대고 돌면서 – 벽과 같이 딱 붙어 있는 느낌으로 – 점점 작아지거나 커지거나 하면서 다양한 형태가 된다. 이후 앉은 상태에서 자세를 맞춘다.” _ 류 씨의 ‘공상의 뇌’ 작업 노트 3장 ‘인간과 동물의 결합’ 시작 부분
류 씨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공상의 뇌’라고 적힌 공책 한 권을 끼고 다녔다. 작품 제안을 받고, 판의 배우들을 생각하며 동작을 구상해놓은 자신의 작업 노트였다. 연필로 빼곡히 적은 이 공책에는 지우개로 지웠다 다시 쓴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류 씨가 구상한 이번 작품은 다섯 장으로 이뤄져 있다. 각 장은 공백, 침묵, 인간과 동물의 결합, 뇌, 두뇌 중심의 활동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류세이오 류 씨의 작업 노트.
– 비마이너 : 공백, 침묵 같은 장의 이름과 춤의 내용은 어떤 관계가 있나?
= 류 : 평소에 혼자 연극을 할 때는 이런 식으로 장이 나뉘어 있으면 장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 춤을 추지만, 이번에는 한 장에 여러 내용을 담아서 표현했다. 1장 공백에는 무음, 두드림, 환상이 담겨 있다.
– 비마이너 : 개념을 떠올리며 춤을 추나, 아니면 춤을 추면서 움직임으로부터 개념을 뽑아내는가?
= 류 : 후자다. ‘공백’을 생각해 ‘공백’을 바깥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 속에서 공백적인 요소를 취하는 방식이다.
– 비마이너 : 장애인극단판에서 연습할 때도 공백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해서 연습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저렇게’라며 움직임 중심으로 연습해왔다고 들었다.
= 류 : 그렇다. 사람들의 동작들을 보고 그 동작들을 취해서 그것을 연결해나가는 방식으로 했다. 그렇게 공백을 만들어냈다.
무대는 ‘공백’에 가깝다. 류 씨는 그런 공백 속에 ‘몸’ 자체를 등장시켜, 관객이 이들의 ‘몸’에 집중하게 한다. 배우들은 흰색 천으로 된 의상을 맞춰 입고 등장한다. ‘장애인’의 몸은 사회의 차별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받아내는 ‘몸’이다. 이 몸이 무대 위에 오를 때, 장애인을 향한 몸의 시선, 비정상의 상징이자 그래서 불행한 사회적인 몸에서 자유로워질 가능성이 생긴다. 무대 위에서 이 몸이 가진 사회적인 맥락은 해체 가능성을 가진다. 이 차이를 지닌 몸들은 빈 무대를 몸 자체로, 춤의 에너지로 채우면서 새로운 언어로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 비마이너 : 판 멤버들을 염두에 두고 공연을 구상했나?
= 류 : 실제로 만나서 연습한 건 지난 1주일 정도였기 때문에, 그전에 사람들을 떠올리며 구상을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같이 있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 있는 연극 이름처럼 ‘공상의 뇌’의 조건 속에서 상상하면서 만들었다.
= 치즈코 바라(류 씨의 어머니, 연극배우) : 전해 들은 것은 휠체어를 탄 사람이 몇 명,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이런 내용이었다.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지를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무척 무리한 동작까지 구상했다.
공상의 뇌 – 마지막 장면을 연기하고 있는 류씨
류 씨의 무대는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는 몸의 규정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무대 밖에서 비장애인이라고 불리는 몸은 일본 춤의 한 장르인 ‘부토’의 느낌으로 몸을 움직이며, 비장애인의 신체 규정을 흩트린다. 비장애인 배우는 아주 천천히 자신의 신체를 비틀며 몇 가지 동작을 반복해 보인다. 이 몸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부드러움이나 편안함과는 거리가 있다. 장애를 규정하는 주류적 잣대인 ‘신체 손상’도 이 무대 위에서 해체되는 느낌이 있다. 무대는 ‘장애의 몸’에서 ‘차이의 몸’으로 재해석될 가능성을 드러낸다. 사회적인 차별이 제거된 무대는 ‘장애’를 규정하는 근거와 낙인을 뒤흔든다.
무대 위에서 낯선 신체는 오히려 유리한 위치에 있다. 낯선 신체의 움직임은 긴장감을 낳는다. 어느 배우의 한쪽 팔은 곧게 펴지지 않고 어느 배우의 걸음은 좌우로 크게 흔들리며 이뤄진다. 익숙한 비장애인의 동작과 다르게 이 배우들의 움직임은 쉽게 예측되지 않으며 다른 방식으로 뻗어 나간다. 전동휠체어를 탄 배우들은 고개를 천천히 돌리거나 팔을 폈다 굽히며 무대 위를 도는 것이 안무의 전부이지만, 관객은 그들의 신체 언어에 주목하게 된다.
– 비마이너 : 언제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나?
= 류 : 10년 전부터다.
= 치즈코 바라 : 야전의 달이라는 극단에서 연습하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몸을 움직이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표현하는 식이다. 이를 ‘자주(自主) 연습’이라고 불렀다. 대본을 쓰는 사람은 그것을 취해서 대본을 쓰곤 한다. 나는 대사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사를 기억해서 말을 했지만, 류는 대사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히려 류는 자유롭게 움직였다. 어떤 식의 자유와 해방 같은 것들을 표현하는 식이었다.
– 비마이너 : 류는 언제부터 혼자 공연을 했나?
= 치즈코 바라 : 2003년부터. 춤을 추기 시작한 뒤 바로였다. 류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졸업 때 무언가를 발표하는데, 논문을 쓴다거나 연극을 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때 류는 춤을 췄다. 음악만 정해서 90분 동안 춤을 췄다. 그때는 분출하듯이 춤을 췄다.
▲마지막 장면, 춤추는 류세이오 류. 사진 김윤섭.
무대는 사회 속에 있다. 어떤 태도로 무대 위를 구성하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관객이다. 관객은 무대와 근접해 있지만 여전히 사회 안에 있다. 하지만 관객을 사회와 분리해 새로운 장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무대가 쥐고 있다.
사회 속에서 시혜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장애인이 무대에 오를 때, 사회는 특수한 서술 방식을 가진다. 장애인과 예술이 겹칠 때 특수한 바라봄의 구조가 생긴다. 진보장애인 운동 진영이 벗어나고자 하는 ‘장애극복신화’가 예술 영역에서도 그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예술과 장애극복신화가 만나면, 작품에 대한 평가나 반응보다는 장애인이 해냈다거나,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다거나 하는 식의 반응이 생겨난다. 우리 사회는 쉽게 그 구도 안에 갇혀왔다. 행위 주체가 장애인인 작품에서 ‘극복’의 담론, ‘에이블’의 담론을 분리해 내는 것은, 예술의 입장에서도 운동의 입장에서도 중요하다.
– 비마이너 : 장애인극단판이 그동안 장애인인 배우를 훈련시켜 무대에 올리는 작업에 치중해온 면이 있다. 그렇기에 류 씨가 이 집단과 함께 작업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 류 : 같이 연습하는 동안 “자유롭게 움직여주세요”라고 부탁했는데, 그때 자유로움이라는 게 무엇인지에 관해 이야기를 듣곤 했다.
= 치즈코 바라 : 자유롭게 움직인다고 하는 건 어려운 대목이다. 류가 “자유롭게 움직이세요”라고 부탁했을 때 거기 있는 사람들은 류처럼 춤 출 수 없었다. 그래서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배우가 우는 일도 있었다. 누구든 그러한데, 누구나 자기에게 가능한 조건 속에서 자유로움을 표현한다. 류는 이것을 ‘자신 안의 자유’라고 부른다. 이것이 실제 공연 연습을 하는 동안에 어려운 대목이었다. 연습하는 동안 ‘이렇게’라며 동작을 특정해주면 차라리 그건 그런대로 따라하기가 좋지만, “자유롭게 움직여주세요”라고 요구하면 류의 움직임처럼 따라하기가 어려웠다. 그 과정이 이어지면서 응어리가 쌓여 그게 폭발했다. 그래서 서로 간에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이야기한 끝에 연습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히가시 타쿠마 씨는 류 씨의 춤에 대해 “과잉인 결여를 끌어안은 류세이오 류의 신체가, 결여 자체를 지렛대 삼아 과잉으로 약동할 때 세계의 어딘가에 금이 간다. 그 균열이 시공의 혼란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그러나 날카롭게 ‘언제, 어디’에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라고 평했다.
를 통해 예술의 언어가 운동의 언어로 작동하는 경험을 한다.는 무대를 통해 여러 가지 척도를 뒤흔들어 놓았다. 사회적인 차별을 제거한 무대 위에서 ‘장애’라는 것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비정상적이고, 부족한 것으로 낙인 찍혀온 몸은 무대 위에서 묻는다. 당신이 느끼는 아름다움의 근거는 무엇이냐고. 당신이 말하는 가능성은 누구를 기준으로 한 것이냐고.
*통역 도움 : 윤여일
김유미 부국장 slowda@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