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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이너] ‘공상의 뇌’ 지배적인 비평언어로부터 관객 해방시켜

관리자

변방연극제, ‘가능한 몸, 아름다운 미물’ 주제로 좌담회
“하나하나 무너뜨리며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이 내 작업방식” 


▲‘가능한 몸, 아름다운 미물(美物)’이라는 주제로 13일 늦은 1시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좌담회가 열렸다.


‘가능한 몸, 아름다운 미물(美物)’이라는 주제로 13일 늦은 1시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좌담회가 열렸다.


이번 좌담회에는 일본의 안무가이자 연출가 류, 연극배우 바라 치즈코, 장애인극단 판(아래 극단 판), 극단 파전 등이 참여했다. 이번 행사는 14회 서울변방연극제 ‘연극 없는 연극, 정치 없는 정치’ 새연극학교의 세 번째 프로그램이다.


이날 좌담회는 류세이오 류와 극단 판의 ‘공상의 뇌 2012’ 작업과정과 지난 11일과 12일 이틀 동안 열린 공연을 본 관객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공상의 뇌’는 지난 가을 극단 판이 뇌성마비장애인인 류세이오 류 씨를 만나 작업 제의를 하면서 시작됐다. 그 뒤 류 씨는 한 달 동안 이번 작업을 구상하고, 그것을 자신의 작업 노트에 정리했다.


류 씨와 극단 판은 전자우편을 주고받으며 소통하다가 지난 2일 류씨가 입국해 3일부터 1주일간 극단 판과 워크숍을 통해 완성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공상의 뇌’는 문래예술공장 박스씨어터에서 2회 공연했다. 류 씨는 이번 ‘공상의 뇌’에서 안무와 연출을 맡았다.


이번에 류 씨와 함께 조연출을 담당한 극단 판 김한솔 씨는 “연습 중 류 씨가 ‘자유롭게 표현해달라’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그 부분을 배우들이 많이 어려워했다”라며 “극단 판은 공동작업을 주로 했는데, 춤은 음악을 듣고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많아 그런 접근 방법이 어려웠던 것 같다”라고 밝혔다.


류 씨의 친모이자 일본 연극배우이며 이번 작업에 류 씨와 함께한 바라 치즈코 씨는 “류 씨가 말한 자유란 자유로운 마음을 뜻한다고 생각한다”라며 “몸이 자유로운 사람들도 어딘가 부자유스런 움직임이 있고 그런 부분이 모여 공연을 만들었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왼쪽에서부터 일본의 안무가이자 연출가 류세이오 류, 연극배우 바라 치즈코, 이날 통역을 맡은 이승효 씨.


공연을 본 관객들은 ‘공백+침묵+인간과 동물의 결합+뇌+두뇌 중심의 활동’이라는 다섯 가지 부분으로 엮인 ‘공상의 뇌’의 구상 과정과 의도에 대해 물음을 던졌다.


류 씨는 “‘공상의 뇌’ 작품을 만들기 위해 처음에 ‘뇌’라는 단어에서부터 시작했는데 ‘무엇이 가능할까?’ 생각이 들면서 ‘보이지 않는 존재, 아무것도 없는 공간’ 등을 떠올렸다”라며 “그러나 내가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 작품을 본 관객들 각자의 다른 생각이 중요하다”라고 답했다.


“그럼에도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듣고 싶다”라고 재차 묻자 류 씨는 “그것을 내가 말할 수 없기에 춤을 추는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류 씨와 오랜 시간 함께 작업했으며 지난 5월 서울에서 이뤄진 한일합작 텐트마당극 ‘들불’ 작가이자 연출가인 이케우치 분페이 씨는 “류 씨와 극단 판의 공연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해방시켜 준다”라며 “해방이란 것은 지배적인 비평언어로부터의 해방이기에 이 공간 역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공상의 뇌’ 공연을 본 관객들의 다양한 감상과 평가도 이어졌다.


한 관객은 “함께 공연을 본 친구가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하지만 표현되지 않는 것에 대해, 지체장애인이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는가’라면서 공연이 그런 부분을 보여주는 것 자체에 상처를 받았다”라고 전하며 “그러나 나는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움직임의 느낌 하나하나가 매우 좋았다”라고 밝혔다.


극단 파전 김남기 연출가는 “장애인 배우의 몸짓에 비장애인 배우가 맞추면서 이를 예술적 동작으로 승화시켰다는 느낌이 든다”라면서도 “비장애인 배우의 에너지가 장애인 배우의 에너지보다 상대적으로 커서 에너지의 조화가 좀 부족하지 않았나”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에 대해 바라 치즈코 씨는 “류 씨는 장애인, 비장애인을 나눠서 안무를 짜거나 작업하지는 않는다”라며 “김 연출가가 생각하는 에너지와 우리가 생각하는 에너지가 다른 것 같은데, 우린 이번 공연에서 장애인들이 비장애인을 끌고 갔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극단 판 김 조연출가는 “연습뿐만 아니라 공연하는 내내 배우들이 류 씨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는데 류 씨는 한 번도 명확하게 답을 주지 않았다”라며 “돌이켜 보니 그런 부분이 공연에 더 도움되었고, 그래서 관객들의 반응도 다양하게 나오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라며 소회를 밝혔다.


류 씨는 “많은 것을 구상하고 많은 것을 써왔지만, 연습실에서 구상한 것을 하나하나 무너뜨리면서 작품을 만들어간다”라며 “하나하나 무너뜨리면서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이 내 작업방식”이라고 답했다.


▲이날 좌담회에 참여한 관객들의 모습.


좌담회의 사회를 맡은 변방연극제 임인자 예술감독은 “오늘 공연 이야기를 하면서 예술 창작, 예술의 언어, 우리의 활동으로서 이야기돼야 하는 많은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라면서 “좋은 작품을 위해, 의미 있는 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라는 말로 이날의 자리를 마쳤다.


한편 이날 좌담회에서 극단 파전 김남기 연출가는 작년에 공연되었던 연극 ‘매직타임’을 이야기하며,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지체장애인 등 각 장애 유형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돼야 하는 연극에서의 ‘베리어프리’(무장벽)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