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사


[비마이너] 장애아동, 연극으로 세상과 만나다

관리자

장애인문화예술판-위풍당당 새로운 자아찾기-발표회

교육연극 프로그램 뒤 학교생활 눈에 띄게 달라져 



찬영이는 한 공간에 머물러 있기를 힘들어하는 아이였다. 교육을 시작하려 하면 아이는 잠깐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때때로 주변에 높은 곳만 보이면 올라가 내려오질 않았다. 함께 있는 사람들을 향해 편안히 마음을 열기 힘들어하는 듯 보였다.


준희는 낯설거나 자신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상황에서는 고개를 숙여버리고 전혀 움직이려 하질 않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말을 배우지 못한 것일까 하고 의문을 가졌지만, 막상 자신에게 필요한 순간에는 구체적인 단어로 말했다. 준희는 말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기를 힘들어했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현민이는 도화지에 색칠을 할 때 끝없이 덧칠하곤 했다. 색깔을 더하고 더하다 보면 도화지는 끝없이 어두워졌다. 평소에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기만 하던 현민이는 색칠할 때 억눌렸던 감정들이 터져 나왔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들은 때로는 “다 잡아먹겠어!”와 같은 격한 표현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이처럼 적절한 사회성 훈련과 경험을 갖지 못해 힘들어하는 장애아동들이 연극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기회가 마련됐다.


장애인문화예술 판(대표 좌동엽)은 올해 4월부터 10월까지 총 20여 회의 교육으로 장애아동 5명과 역할극 교육연극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지난달 30일 교육의 결과를 발표하는 ‘위풍당당 새로운 자아 찾기’ 발표회를 열었다. 이번 프로그램은 파라다이스 복지재단이 지원했다.


숨바꼭질, 가면극… 고립의 벽을 깨는 말걸기

이날 발표회에서는 숨바꼭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가면극과 같은 다양한 놀이를 선보였다. 이러한 놀이를 통해 프로그램에 참여한 장애아동들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려는 노력의 결과물들을 표현해냈다.


이 각각의 놀이는 아이들이 세상과 만나는 길 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이번 역할극 교육연극의 전체적인 기획을 맡은 강진희 씨는 가면극에서 스스로 ‘괴물’ 역할이 되길 자청했던 현민이의 사례로 운을 뗐다.


강 씨는 “현민이의 경우 자기 속마음에서는 누군가가 자신과 놀아줬으면 하고 바라지만, 또래 아이들로부터 놀림당하며 배제되었던 경험 때문에 그런 감정을 억눌러왔다”라면서 “가면극은 ‘괴물’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아이의 욕구를 적절하게 표현하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진행했다”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가면벗기’는 아이가 고립을 끝내고 타인과 소통하는 문을 여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숨바꼭질에서는 각자가 술래가 되기도 하고 ‘숨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역할 속에서 아이들은 일상에서 자신들이 겪었던 고립이 재현되는 것을 경험한다.


술래가 다른 이들 모두가 숨어버린 광경 앞에서 막막함을 경험한다면, ‘숨는 자’는 밀폐된 어떤 공간에 틀어박혀 잠시나마 집단으로부터 격리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즉 술래가 광막한 황야를 방황하고 있다면, 숨는 사람은 좁은 ‘구멍’ 속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며, 그 형태의 대조 덕분에 유희의 경합이 성립될 수 있다.

이처럼 술래와 숨는 사람 모두 일종의 ‘사회적 격리’의 축소판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술래는 숨은 사람들을 발견함으로써 공동체의 일원으로 복귀하고 숨은 사람은 술래에게 발견됨으로써 밀폐된 공간을 벗어나 다시 사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대다수 장애아동은 학교와 사회 속에서의 차별, 따돌림 때문에 또래집단과 이런 놀이를 통해 고립을 극복하고 관계를 형성할 적절한 기회를 갖지 못한다.이에 대해 강진희 씨는 “장애아동들이 놀이에서 배제되고 부모님의 케어만을 받다 보니 오직 안전만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라면서 “따라서 이 교육의 주된 목표는 놀이를 통해 타인에게 다가가면서 내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아동의 사회성 향상을 위한 교육, 계속되어야

이 프로그램의 전체 진행을 맡았던 장애인문화예술 판의 최은정 활동가는 교육 이후 아이들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음을 들뜬 목소리로 전했다.

우선 학교의 담임선생님들부터 아이들의 밝아진 태도와 사회성에 놀랐다고 한다. 낯선 상황을 만나면 입을 닫아버리거나 몇십 분이고 울기만 하던 아이들이 점차 변화에 적응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한다.

최 활동가는 아이들의 부모들이 내년에도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지를 자주 문의하는데, 확답을 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현재 학교에서는 장애아동을 위해 이러한 별도의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고, ‘판’에서 진행한 것과 같은 장애인단체의 프로그램은 재단 등의 지원사업에 의해 1년 단위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 활동가는 연극과 같은 문화예술적인 길을 통한 장애아동의 사회성 향상 프로그램을 더욱 발전된 형태로 진행하기 위해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활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금철 기자 | rollingstone@beminor.com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