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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이너] 뇌병변장애인, 독창적 춤의 언어를 발견하다

관리자

류세이오 류, 장애인극단판 ‘공상의 뇌’
“예측 불가능해 더욱 흥미롭고 아름다워” 


지난 4월 11일 텐트마당극 ‘들불’ 공연의 마지막 부분에 일본의 한 배우가 등장해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 그의 몸짓에서는 아우라(Aura – 예술 작품에서, 흉내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 비록 공연 끝부분에 짧게 등장했지만, 그의 움직임으로부터 받은 무언의 느낌은 오래도록 각인되었다. 그가 바로 뇌성마비장애인이자 춤꾼인 류세이오 류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직접 연출과 안무를 맡은 작품 ‘공상의 뇌’를 들고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이번 작품의 기획에는 중증장애인의 삶을 주제로 매년 새로운 창작극을 선보이는 장애인극단 판(아래 극단 판)이 있었다. 그동안 정기공연에서 ‘불편한 상상’, ‘역전만루홈런’ 등을 선보인 극단 판은 류세이오 류와 협업을 통해 이전의 작품과 다른 노선의 작업을 시도했다.


▲’공상의 뇌 2012′ 한 장면.


이들이 지난 11~12일 서울변방연극제에서 선보인 ‘공상의 뇌’는 ‘공백’, ‘침묵’, ‘인간과 동물의 결합’, ‘뇌’, ‘두뇌 중심의 활동’ 등 총 5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춤 공연으로 뇌병변장애인이 주축이 되어 기존의 춤 공연이 보여주지 못한 낯선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공상의 뇌’를 관람한 한 관객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저도 장애인이지만 장애인의 움직임이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어요. 류세이오 류와 비장애인 배우가 단둘이 춤을 추는 장면에서는 비장애인의 움직임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할 수 있었던 반면, 장애인의 춤은 예측이 불가능해 더욱 흥미로웠고 그 움직임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이 안겨주는 아름다움’. 그것은 ‘공상의 뇌’의 작품을 정확히 꿰뚫어 본 평가였다. 류세이오 류와 극단 판이 보여준 몸짓은 기존의 춤과 다른 비틀림, 장애인의 몸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선과 리듬 등이 어우러져 그 안에서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해내고 있다.


이미 기존에 존재한 것을 그대를 답습하거나 모방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예술 바깥에 존재했던 낯선 것을 적극적으로 예술영역 안에 끌어오는 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창조자 고유의 언어가 되어 그 언어 안에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스스로 그러한 언어를 획득한 자만이 비로소 예술의 영역 안에서 자신의 세계를 펼쳐 보일 수 있다. 류세이오 류의 작업은 그런 의미에서 ‘에이블아트’의 영역을 넘어서는 곳에 도달해 있었다. 그것은 이미 그 자신이, 자신의 세계를, 그 만의 신체 언어를 통해 하나의 작품으로 구현하고 어떤 망설임 없이 제 언어를 관객들에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류세이오 류와 극단 판이 ‘공상의 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극단 판 단원들은 정답을 쥐여주지 않는 연출방식에 스스로 많은 질문을 던져야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한다.


그간 비장애인에 의해 억압됐고 비정상성으로 규정되어왔던 장애인의 신체를 통해 직접 무언가 표현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을 표현하는 배우에게도 표현 수단이기 이전에 하나의 상처의 언어이며 장애인이라는 ‘낙인’의 언어로 규정되어 왔기에 오랜 훈련을 거치지 않은 채 신체를 통해 감정을 끌어내기란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터다.


실제로 극단 판 단원들은 ‘자유롭게 표현해 보라’는 류세이오 류의 지시를 가장 어려워했다고 한다. ‘자유롭게’ 표현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몸을 해방하는 작업이다. 외부의 목소리가 아닌 내면에서 고동치는 목소리를 따라 신체를 움직이는 작업은 장애인 문화의 역사가 깊지 않고, 예술교육의 기회나 훈련 경험이 부족한 국내 배우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지나 ‘공상의 뇌’가 무대에 올랐을 때 류세이오 류와 극단 판 배우들은 장애인 문화예술영역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남기기 충분했다. 그것은 비로소 스스로 새로운 언어를 획득해 관객들을 찾아온 것이다.


기존의 많은 장애인극단이 에이블아트를 넘어서 하나의 예술로서 인정받기 위한 고민을 드러내고 있지만, 아직 그러한 고민이 작품 안에서 꽃피우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의 삶과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작품 속에 담아내는 시도는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 스스로 독창적인 언어를 극단까지 밀고 나가 자신만의 미를 완성해내는 예술가와 작품이 도래는 아직 멀게 느껴진다.


장애인의 움직임을 통해 미를 추구하는 작업은 일본의 극단 타이헨 역시 이미 국내에서 ‘황웅도 잠복記’를 통해 선보인 바 있다. 타이헨이 국내에서 선보인 ‘황웅도 잠복記’가 중증장애인의 움직임을 통해 미를 추구하는 그들의 예술철학이 잘 드러내고 있지만, 황웅도의 일대기를 몸짓으로만 풀어내는 데는 다소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류세이오 류와 극단 판이 선보인 ‘공상의 뇌’는 그 주제 자체가 관념의 세계에서 출발해, 이 낯선 몸짓은 더욱 작품 안에서 좀 더 자유롭게 녹아들고 있었다. 이 움직임이 작품 속에 어떤 메시지를 표현하느냐는 물음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규정되지 않은 몸짓 그대로 관객들에게 낯설고 새로운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장애인 예술가인 극단 타이헨 김만리 씨와 ‘공상의 뇌’를 연출한 류세이오 류 등은 한 작품의 중심에서 그들의 세계관을 급진적으로 구현해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국내 장애인극단이 비장애인 연출가의 주도하에 많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급진적 장애인 예술가의 출현은 무엇보다 절실하다. 그리고 이러한 갈증을 장애인 극단 판은 협업을 통해 모색해낸다. 협업을 통해 만들어낸 ‘공상의 뇌’는 장애문화예술의 새로운 빛을 밝히기에 충분하다. 그 빛이 단지 가능성에 머물더라도 이러한 시도 그 자체가 국내 장애인 문화예술의 미래를 한 단계 끌어올릴 것이다.

▲’공상의 뇌 2012′ 가운데, 3장 ‘인간과 동물의 결합’의 한 장면.


▲류세이오 류와 1주일의 워크숍을 통해 이번 작품을 만들어낸 장애인극단판 배우들.





김가영 기자 chara@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