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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재단]재구성되는 몸의 기억

작성일
2020-02-0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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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문화예술판(이하 ‘판’)의 <삐딱 선>과 극단 애인(이하 ‘애인')의 <1인 무대>를 비슷한 시기에 관람했다. 두 작업 모두에서 장애는 공연의 주된 화두이자 예술의 형식으로서 주요하게 자리한다. 그중에서도 장애를 가진 몸 특유의 물성과 움직임, 현존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몸의 기억과 역사를 재구성하는 순간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판의 <삐딱 선>에서는 개별 몸들을 예속시키는 주권적 ‘선’을 드러내고 재구획하고자 하는 시도가 두드러졌고, 애인의 <1인 무대>에서는 배우들이 직접 몸으로 만든 말과 움직임이 모여 다양한 색채의 공연을 이루었다.

정지하기, 재구획하기: 장애인문화예술판의 <삐딱 선>

“궤도를 벗어나 우주로 달려갈 수 있을까?” 판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질문으로 집약된다. 무대는 돌고 도는 장난감 기차의 궤도를 끊으며 시작되는데, 이는 어떤 정지의 계기를 마련한다. 나의 자리와 내가 향한 곳을 살피기 위해서는 달리는 것을 멈추는 일, 선을 벗어나는 일, 삐딱하게 서는 일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끊긴 궤도의 틈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은 “몸(들)의 역사와 기억”이다. 천자문을 익혔던 일에 대한 회상, 사고 이후 재활병원에서 보냈던 시간, 목욕탕에서 겪었던 일, 장애인-비장애인 연인 사이의 사건들이 불연속적으로 엮이며 전개된다.


이 이야기들을 매개하는 것은 각각의 몸들이다. 장애를 가지거나 장애를 가지지 않은, 걷거나 휠체어를 타거나 곧게 서거나 웅크린 몸들. 그 몸들은 무대에 올라와 말하고, 객석의 단층을 천천히 굴러 내려오며, 자신의 리듬으로 움직이고 춤을 춘다. 자신들의 "역사와 기억"을 조달하는 이 몸들은 재현의 권력에 예속되지 않아 각기의 시간성과 운동성으로 움직이며, 각자가 통과했던 경험적 사건들의 단면들을 드문드문 보여준다. 일련의 서사들은 성기고 느슨하게 흘러간다. 모호한 시작점에서 문득 펼쳐지다가 이렇다 할 끝을 맺지 않고서 다른 이야기로, 다른 지점으로 불쑥 건너뛴다.
반면 공연의 톤을 일관되게 조정하며 균일한 에너지로 전개해나가는 것은 저자-텍스트의 목소리다. 극 내내 배우들의 목소리에 의해 발화되는 이 텍스트는 일정하게 비판적 문제제기로 수렴한다. 요컨대 그것은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고정관념을 벗어난 일탈”을 상상하고, 나의 운동성을 지배하는 “관성”으로부터 탈피할 것. 이는 “내가 가진 생각이 확고하게 뿌리박혀 있을수록 가능성은 불가능으로” 사장되기 때문이며, “진실”은 “거꾸로 혹은 비스듬히 서야” 비로소 보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선을 거부하고 위반하며 넘어설 것을 표명하는 판의 공연은 단연 철학적이다. 그러니까 철학의 일이 비판임을, 의심 없이 받아들여 온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우리가 밟고 선 지반의 조건과 토대를 살펴, 그것이 재고될 필요가 있는 상대적이고 임의적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그러하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목소리에 부여된 권위는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저자-텍스트와 배우-몸은 무대에서 점점 분리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저자의 목소리가 상대성 이론을 비롯해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론적, 개념적 발화를 지속하는 것에 비해 개별 몸들의 이야기들은 더 진전, 구축되지 않고 텍스트에 환원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는 텍스트의 주장을 중심으로, 몸의 경험을 주변부로 위치시키며 양자의 관계를 불가피하게 위계화한다. 더하여 이러한 구성은 장애 정도에 따라 배우들의 비중이 분배되게끔 하는 결과를 낳는다. 저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은 길고 개념적인 대사들을 보다 분명한 발성과 딕션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배우들이므로, 결국 배우들의 비중은 장애의 경중에 따라 불균등하게 배치된다. 극의 클라이막스에서 대안적 ‘삐딱-선'으로 제시되는 거대한 경사로가 다소 의문점을 남기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오로지 비장애 배우(로 패싱되는 몸들)에 의해 구축되는 그 선을 우리는 과연 비장애주의가 아닌 방식으로 긍정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 공연이 시도하는 바가 ‘여기'와 '저기'를 구분하는 선들로부터 밀려나고 배제된 몸들을 드러내는 일임은 분명하다. 바로 그 몸들에 의해서 전달되는 과거의 시간들은 거칠고 정리되지 않은 것일지는 몰라도 더 이상 타자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공연은 자신의 고유한 시간과 운동으로 세계에 나아갈 길을 탐색하면서 바로 그 몸에 의한 새로운 선 긋기를 고민한다. 극의 중반에서 무대 위에 생겨나는 긴 종이테이프 선은 그러한 고민에 의해 성취된 유의미한 실천일 것이다. 장애를 가진 배우가 온몸을 사용하여 무대를 가로질러 긋는 선은 바르지도 곧지도 않은 선이다. 그러나 그 선은 꺾이고 휘어짐으로써 외부에서 제시하는 매끄러운 선의 허위성을 거부하며, 세계를 주체적으로 재구획하는 시도에서 불가피한 저항과 분투를 기입한다.